
1950년대 후반, 단 15세의 소년이 허더즈필드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그가 영국 축구계의 거인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체격에 안경을 쓴 그 소년이 바로 데니스 로였다. 클럽 관계자들은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정말 네가 로니?' 관계자들이 마침내 그를 발견했을 때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 작은 소년은 후에 '킹'이라 불리며 세계 축구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펠레는 "당시 브라질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유일한 영국 선수"라고 평가했고, 빌 샹클리는 "내가 본 가장 빠른 판단력을 가진 축구선수"라고 칭찬했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그를 "나의 영웅"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로는 사시(斜視)로 인해 물체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웠고, 또래들의 무자비한 놀림을 견뎌야 했다. 두꺼운 안경을 쓴 그를 '외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십대가 되어서야 첫 축구화를 신을 수 있었다.
허더즈필드에서 시작된 그의 축구 여정은 맨체스터 시티를 거쳐 토리노로 이어졌다. 1962년, 22세의 나이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하면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첫 시즌에서 44경기 29골, 이듬해에는 42경기 46골을 기록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바비 찰턴으로 이어지는 '홀리 트리니티'는 맨유의 꿈의 극장을 수놓았다.
베스트는 "로는 반의 반만큼의 기회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고 회상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16년 동안 55경기 30골을 기록하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모든 영광의 순간이 그렇듯, 로의 전성기도 서서히 저물어갔다. 1974년,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고 맨유를 상대로 백힐 슛으로 골을 넣었을 때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클럽의 강등을 확정짓는 듯한 순간이었다. 비록 다른 경기 결과로 맨유의 강등이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로는 "그 주말만큼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1974년 8월 10일, 그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마지막 경기 훨씬 이전에 이미 확립되었고, 그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