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3년 여자월드컵 우승 직후 제니 에르모소(Jenni Hermoso)에게 동의 없이 입맞춤을 한 혐의로 기소된 루이스 루비알레스(Luis Rubiales) 전 스페인축구협회(RFEF) 회장이 550일 만에 성추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스페인 고등법원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루비알레스에게 1만 800유로(약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또한 에르모소에게 200m 이내 접근과 1년간 연락을 금지하는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다만 에르모소에게 합의 인정을 강요했다는 협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사건은 여성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암울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에르모소는 이달 초 증언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야 할 순간을 망쳐버렸다"고 진술했다.
사건 이후 스페인에서는 '세 아카보'(Se Acabo·이제 끝이다)라는 구호가 확산됐다. 스페인 정부, FIFA, UN을 비롯해 수많은 선수와 구단이 루비알레스의 행동을 강력히 비난했다. 월드컵 우승멤버 23명을 포함한 81명의 스페인 여자 선수들은 루비알레스가 회장직을 유지하는 한 국가대표팀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페인 스포츠 일간지 마르카의 데이비드 메나요 라모스 기자는 BBC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재판이 유튜브로 생중계될 정도로 국민적 관심사였다"고 전했다. BBC 뉴스의 가이 헤지코 기자는 "이번 논란은 축구와 스포츠를 넘어 스페인의 '미투' 운동이 됐다"며 "직장 내 남녀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루비알레스는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당초 키스 혐의로 1년, 협박 혐의로 1년 6개월 등 총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었다. 헤지코 기자는 "루비알레스는 구금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재판에서도 시상식 때 흥분한 것일 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한편 스페인 여자대표팀은 오는 23일 발렌시아에서 벨기에와 네이션스리그 개막전을 치른다. 이어 28일에는 웸블리에서 2023 월드컵 결승 상대였던 잉글랜드와 맞붙는다.